국내 증권사들이 올 한 해 해외주식 위탁매매로만 2조 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수수료 수익을 올린 반면, 정작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 절반은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는 뒷전인 채 현금 살포 등 과도한 마케팅으로 수수료 챙기기에만 몰두했다고 판단, 즉각적인 고강도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1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해외투자 실태점검 중간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주요 12개 증권사가 벌어들인 해외주식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총 1조 9,505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조 2,458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고치다.

여기에 환전 수수료 수익 4,526억 원까지 더하면 증권사들은 해외투자 열풍을 타고 그야말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자료=금융감독원


그러나 투자자들의 성적표는 처참했다.

8월 말 기준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계좌 중 49.3%가 원금 손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계좌당 평균 이익은 지난해 420만 원에서 올해 5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해외 파생상품에 손을 댄 개인투자자들은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5년 연속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형적인 수익 구조의 배경에는 증권사들의 '제 살 깎아 먹기'식 과당 경쟁이 있었다.

금감원 점검 결과, 다수의 증권사가 거래 금액에 비례해 현금을 지급하거나 '테슬라 1주' 같은 경품을 내걸며 고객 유치전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한 증권사는 고객이 200억 원어치 해외주식을 거래하면 위탁매매 수수료로 4,000만 원을 챙기면서, 고객에게는 리워드로 50만 원을 지급하는 식의 이벤트를 운영해왔다.

이는 투자자의 잦은 매매(회전율)를 유도해 증권사의 배만 불리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영업점 직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에 해외주식 실적 비중을 높여 영업 압박을 가하거나, '엔비디아가 5% 오르면 214% 수익'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고위험 옵션 상품 투자를 부추긴 사례도 적발됐다.

자료=금융감독원


반면, 리스크 관리는 허술했다.

해외투자는 환율 변동이나 국가별 시차, 과세 체계 등이 국내와 달라 위험성이 크지만, 대부분의 증권사는 계좌 개설 시 약관 형식으로만 이를 알리는 데 그쳤다.

신용융자가 금지된 해외주식 규정을 우회하거나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수수료 수익 증대에만 열를 올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영업 행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금감원은 이날부터 즉시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돌입하며, 위법 행위가 발견될 경우 해외주식 영업 중단 등 최고 수준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당장 증권사들은 거래 금액에 비례해 현금을 주는 신규 이벤트를 중단해야 하며, 이러한 마케팅 금지는 2026년 3월까지 이어진다.

또한 과당 매매를 유발하는 비례형 이벤트는 내년 1분기 중 협회 규정 개정을 통해 원천 금지될 전망이다.

아울러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시 해외투자 관련 KPI 반영을 자제하고, 투자자 리스크 안내를 강화하도록 지도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증권사들의 무분별한 해외주식 마케팅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며 "투자자들 역시 화려한 이벤트 뒤에 숨겨진 리스크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