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엔비디아의 최신 AI(인공지능) 반도체 구매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번 조치는 미 행정부의 수출 규제와 중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가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로, 글로벌 AI 공급망에 거대한 파고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전략에도 비상이 걸렸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이번 주 주요 자국 테크 기업들에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칩인 'H200'의 신규 주문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단순히 주문을 멈추는 수준을 넘어, 조만간 중국산 AI 반도체 구매를 의무화하는 강제 조치까지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설계 칩에 대한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화웨이 등 자국 반도체 기업들을 육성해 '반도체 자립'을 완성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노골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파격적인 수출 정책에 대한 정면 거부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 매출의 25%를 미국 정부에 세금 형태로 내는 조건으로 H200의 대중 수출을 전격 허용하며 실리를 챙기려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미국의 이 같은 '수익 공유' 제안을 자국 테크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비용 전가이자 기술 종속의 연장선으로 판단하고, 아예 구매 자체를 차단하는 강경책을 선택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최근 CES에서 "중국 내 수요가 강력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던 H200 수출 전선에 돌발 악재가 터진 셈이다.
중국의 이번 '엔비디아 패싱'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H200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활을 걸고 양산 중인 5세대 HBM(HBM3E)이 대거 탑재되는 모델이다.
특히 엔비디아에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 온 SK하이닉스와 최근 공급망 진입에 성공한 삼성전자로서는 중국 시장이라는 거대한 수요처가 증발할 위기에 처했다.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대신 성능이 떨어지는 자국산 칩으로 선회할 경우 여기에 들어가는 HBM의 사양이나 물량도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물론 중국이 자국산 AI 칩 생산을 늘리더라도 기술 격차상 당장 한국산 HBM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창신메모리(CXMT) 등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HBM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과는 2~3세대의 기술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HBM 자체를 대중 수출 통제 품목으로 묶어두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국산 칩 사용을 강제할 경우 우리 기업들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하거나 미국의 강력한 제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