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불과 닷새 사이였다. 지난 21일 동탄, 그리고 26일 광주.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숨을 거뒀다.
30대와 50대, 나이도 근무 지역도 달랐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섬뜩하리만치 닮아 있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너머에서 그들은 쓰러졌다.
새벽 배송이라는 혁신 뒤에 가려진 이 비극은 더 이상 '우연'이나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사고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이 갈려 나가는 시스템의 구조적 붕괴다.
광주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50대 노동자에 대해 경찰과 사측은 '지병'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는 심야 노동은 건강한 사람의 신체 리듬마저 무너뜨리는 가혹한 환경이다.
설령 지병이 있었다 한들, 그 지병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악화시킨 기폭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쏟아지는 물량, 초단위로 체크되는 작업 속도, 그리고 휴식 없는 야간 노동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아닌가.
사측이 내세우는 '지병'이라는 설명은 노동자에게 가해진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은폐하기 위한 비겁한 방패에 불과하다.
쿠팡의 '로켓 성장' 신화는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쓰여지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사망 사고는 단기 계약직 위주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 효율만을 맹신하는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쿠팡 측은 매번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이지만, 현장은 여전히 '죽음의 물류센터'라는 오명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대기업 물류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은 법과 제도가 현장에서 무력하다는 방증이다.
솜방망이 처벌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기업에게 "안전 투자는 비용일 뿐,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라는 잘못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비자의 편리를 위해, 기업의 이윤을 위해 과연 몇 명이 더 희생되어야 하는가.
노동자의 생명은 기업이 감수해야 할 '비용'이 아니다. 기업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자 '책임'이다.
반복되는 죽음을 단순히 통계 숫자로 기록하고 넘어가는 사회는 결코 안전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이제는 쿠팡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다.
'지병 탓', '우연한 사고'라는 변명 뒤에 숨지 말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더 이상의 죽음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 비극의 공모자가 되는 길이다.
로켓 배송보다 중요한 것은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의 안전한 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