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2026년 새해 경영 화두로 '판의 대전환'을 제시하며 조직 전반에 고강도 혁신을 주문했다.

함 회장은 신년사에서 1963년 이탈리아 바이온트 댐 참사를 직접 거론하며,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안일한 미봉책은 그룹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를 날렸다.

이는 AI(인공지능)와 빅테크의 공습, 가속화되는 머니무브(자금 이동) 현상 앞에서 기존의 성공 방식인 '은행 중심의 안정적 성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로 풀이된다.

2일 하나금융에 따르면, 함 회장은 신년사 서두에서 "금융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함 회장은 모건스탠리 보고서를 인용해 2028년까지 빅테크의 AI 투자 규모가 3조 달러에 달할 것임을 상기시키며, 현재의 변화가 단순한 '찻잔 속 태풍'이 아닌 산업혁명 수준의 근본적 격변임을 강조했다.

특히 함 회장은 바이온트 댐 관리자들이 산사태 징후에도 불구하고 수위를 고작 20m 낮추는 데 그쳐 2,0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비극을 언급하며, "변화의 파고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수위 조절 식의 대응만 고집한다면 우리도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함 회장의 이러한 위기론은 주력 계열사인 하나은행과 비은행 부문 모두가 직면한 현실적 한계에서 기인한다.

함 회장은 "은행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증권사가 등장하고 IRP(개인형 퇴직연금) 계좌 이탈이 일상화됐다"며 '맏형'인 은행의 위기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동시에 증시 활황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비은행 부문의 성과에 대해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며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

부동산 활황기에도 무리한 확장을 자제하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 위기를 기회로 만든 하나자산신탁의 사례를 모범 답안으로 제시하며, 철저한 옥석 가리기와 체질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함 회장은 위기 돌파의 핵심 키워드로 '디지털 금융의 설계자'를 꼽았다.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의 룰(Rule)을 만드는 주도적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으로는 최근 논의가 활발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지목했다.

함 회장은 "단순히 코인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정부 정책과 공조해 발행부터 유통, 사용, 환류에 이르는 완결된 생태계를 하나금융이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기존 금융업의 울타리를 넘어 가상자산과 결합된 미래 금융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올해 마무리되는 인천 청라 그룹 헤드쿼터 조성 사업은 이러한 '대전환'의 물리적, 심리적 거점이 될 전망이다.

함 회장은 청라 이전을 단순한 사옥 이동이 아닌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혁신하는 출발점"이라고 정의했다.

함 회장은 하반기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이주 과정에서 영업 공백이나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내부통제를 당부하는 한편, 청라의 첨단 인프라를 바탕으로 계열사 간 경계를 허무는 수평적 협업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년 병오년, 함영주 회장이 쏘아 올린 '생존을 위한 대전환'의 승부수가 하나금융그룹의 새로운 100년을 여는 기폭제가 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